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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일본 좌파 운동 번역/중핵파 (7)
방구석 룸펜

-1절大地を打てば 地底より대지를 두드리면 땅속에서 原初のひびき 鳴りわたる원초의 울림이 울려퍼진다土に生まれ 土地に活き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살며骨を埋める その土の끝내 이 몸을 묻을 바로 그 땅의誇りも高き 「農地死守」긍지 높은 '농지 사수'われらが業に 栄えあれ!우리들의 업에 영광 있으라! 2절大地捲いて ひるがえる대지를 휘감고 나부끼는「空港阻止」の むしろ旗'공항 저지'의 거적 깃발ものみの櫓 がっしりと 감시 망루는 탄탄하고 麦の刃も 空を刺す 보리의 칼끝도 하늘을 찌르네開拓魂 ゆるぎなく 개척자의 넋은 흔들림 없이我らが仲間 強くあれ!우리의 동지여 굳건하라! 3절老松うたう 下総野 노송이 노래하는 시모우사 들녘 平和の民の 拠るところ 평화의 백성이 기거하는 곳風さわやかに 土地豊か 바람은 상쾌하고 토지는 비옥하며自主農民の ..

본 글은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중핵파 학생조직) 발간 '니혼대-도쿄대 투쟁 50년'에 실린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1. ‘10월 8일 하네다’의 도쿄대로의 파급 ‘1967년 11월 11일 심야, 고요한 도쿄대학 고마바 캠퍼스 안에 예고도 없이 헬멧에 게바봉을 든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랑비 속에서도 형형색색의 헬멧들이 대열을 지어 차례차례 캠퍼스로 들어왔고 12일 오전 2시에는 2천 명에 달했다. 제1 본관 앞에서 정문에 걸친 광장은 스크럼을 짜고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학생들로 넘쳤고, 어둠 속은 이상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12일 사토 수상 방미를 저지하기 위해 10월 8일에 이어 다시 하네다공항 현지 투쟁에 전국적으로 집결한 학생들…3파계 전학련(사청동 해방파, 사청동, 마르학동..
혈채(血債)주의 - 노동자 계급에 대한 절망을 조직하다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의 노동자 계급은 피억압 민족・인민에 대한 배타주의・차별주의에 물들어있기 때문에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하는 사상.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불신과 절망을 부추겨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하더라도 차별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사상이다. '혈채血債'는 '피의 채무'라는 뜻. '먹으로 쓴 거짓말은 피로 쓰여진 사실을 지울 수 없다. 혈채는 반드시 동일물로 상환되어야 한다'는 중국 문학자 루쉰의 말에서 따온 것. 혁공동은 70년 투쟁의 과정에서 일제에 의한 조선・중국・아시아 인민에 대한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전체 역사와 일본 노동계급이 이를 저지하지 못하고 패배한 것에 대한 자기비판적 총괄..
*본 번역은 2018년 12월 발간된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중핵파)'의 학생조직인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의 기관지 '중핵' 복간 4호 「日大・東大闘争50年 ー21世紀学生運動の爆発を!」를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2) 니혼대 투쟁 전사(前史) '1968년'에 이르기까지 니혼대생의 투쟁을 돌아보고자 한다. 전후 혁명기, 니혼대 학생운동은 전국 학생운동 중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1945년 12월의 도쿄 도내 학생 연락 회의(東京都下学生連絡会議)에선 도쿄대나 와세다대와 더불어 니혼대학의 이름도 등장한다. 그 파도는, 1948년 가을부터 수업료 인상과 학생운동의 지도부 탄압에 반대하는 니혼대 미시마 캠퍼스에서의 '미시마 반파쇼 투쟁'에서 폭발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퇴학처분의 남발(..
*본 번역은 2018년 12월 발간된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중핵파)'의 학생조직인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의 기관지 '중핵' 복간 4호 「日大・東大闘争50年 ー21世紀学生運動の爆発を!」를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1) '68년 9.30' 료고쿠 강당 대중 단체교섭 '물러나기로 결의했습니다' - 니혼대학 회장 후루타 쥬지로가 이렇게 발언한 순간, 니혼대학 료고쿠 강당 안은 열렬한 박수갈채가 일었고, 들썩였고, 잘게 썬 색종이들이 휘날렸다. 니혼대학 10만 학생이 반동 대학 당국에 완전히 승리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68년 9월 30일, 료고쿠의 니혼대학 대강당에는 수만 명의 니혼대생들이 결집했고, 그 압력으로 강당이 흔들릴 정도였다. 경찰권력은 참가자 수를 축소 발표했고, TV, 신문 등 ..
˙*본 번역은 2018년 12월 발간된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중핵파)'의 학생조직인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의 기관지 '중핵' 복간 4호 「日大・東大闘争50年 ー21世紀学生運動の爆発を!」를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머리말 2018년은 역사적인 '니혼대 투쟁', '도쿄대 투쟁'의 50주년이다. 신기하게도 2018년에는 전학련 위원장에 다카하라 쿄헤이 군(도쿄대학)이 취임하고, 니혼대에서는 '미식축구 태클 사건'이 일어나 이사장 독재의 부패구조가 폭로되었다. 니혼대학, 도쿄대학은 제국주의 대학에 대항한 학생 반란의 2대 정점이었고, 그 빛은 아직 바래지 않았다. 투쟁은 공유되고 새로운 세대에게 계승되지 않으면 안 된다. 투쟁으로부터 겨우 5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인류사적 대투쟁들과 같이 니..
˙*본 번역은 2018년 12월 발간된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중핵파)'의 학생조직인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의 기관지 '중핵' 복간 4호 「日大・東大闘争50年 ー21世紀学生運動の爆発を!」를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목차 머리말 제 1장 니혼대 투쟁 (1) '68년 9.30' 료고쿠 강당 대중 단체교섭 (2) 니혼대학 투쟁사 (3) '34억 용도불명금' 발각 - 전공투 결성 (4) 바리케이드 봉쇄가 전교에 확대되다 (5) 수습 선동을 넘어 투쟁은 나아간다 (6) '파괴의 사상'이란 무엇인가? (7) '격동의 10일간'과 '9.30 단체교섭'의 승리 (8) 불굴의 계속되는 투쟁 - 도쿄대 투쟁과의 합류 (9) 지도부에 대한 탄압과 바리케이드 강제 해제 (10) 니혼대 투쟁을 계승하며 제 2장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