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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사회와 진보정당 본문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어떠한 가치가 가진 본질은 망각되고 그것을 따라하는 복제품만 남아있는지 오래다.
아이돌은 예술인의 흉내를 낸다. 하지만 그 본질은 팬과의 연애이다. 하지만 그 연애감정마저도 흉내이다. 기획사는 유사연애를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소비자는 그것을 진짜라고 믿고 구매한다. 예술과 사랑이라는, 미학과 철학의 영역이었던 어떤 전통적 가치는 바뀌었다. 사회가 바뀜에 따른 그 자체의 내용의 변화가 아니다. 예술과 사랑을 참칭하는 현대의 무언가는, 전통적 가치가 가진 본질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인 양 굴지만, 실제로는 외양만을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예술은 인간 본연의 감정과 감성의 표현이다.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사랑일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중 가장 높은 차원의 표현이 예술이다. 그 사랑은 이성일수도, 동성일수도, 초월적 존재일수도, 삶일수도, 대중일수도, 이상적 사회일수도 있다.
아이돌이라는 산업은 이러한 예술이 가진 특성에서 사랑을 거세한다. 오로지 표현의 부산물일 뿐인 춤과 노래와 시를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맞게 기획사가 생산해내고, 생산된 어떤 덩어리는 아이돌 개개인이라는 단말을 통해 대중에게 중계된다. 이 단말은 또 하나의 역할을 하는데, 바로 자본주의적 틀에 맞춰 만들어진 연애상품으로서의 역할이다. 이는 한국 아이돌 산업이 가진 고유하고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유사연애라는 형태를 통해 아이돌은 대중에게 연애상품으로 소비된다. 소비자는 단순한 대량생산상품 소비자가 아닌, 산업을 지탱하는 충성심 높고 맹목적인 소비시장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산업이 확대재생산되도록 다양한 2차 컨텐츠를 생산하는 무급노동자가 된다. 이 모든 것은 소비자의 단말에 대한 '사랑'의 실현으로서 이뤄진다. 즉, 과거엔 상품이 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인간의 고유한 감정이나 행동마저도 적절한 마케팅과 시장분석이 있다면 훌륭한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모습은 제국주의 침략자와 철학 없는 과학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혹은 그 역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상호간 영향을 주는 관계일 것이다. 잘 쓰인 판타지 소설들은 마법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해 이를 무기화하는 클리셰를 가지기도 한다. 비시장적 영역에 대한 자본주의의 침투를 잘 은유한 예시라 할 수 있다.)
기이하고 유사한 사랑의 상품화는 가뜩이나 기만적인 부르주아 정치에도 깊게 침투한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계급과 지배의 문제이다. 사회의 다층적인 여러 금들을 누가 잘 파악해서 가져가느냐가 정치의 기교라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아래층에 가장 깊게 파인 금은 결국 계급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선 이 가장 아래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층층이 다른 금들을 쌓아 가려버릴 필요가 있다. 계급을 이야기하지 않는 정치는 그래서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에 기만적이다. 여기에 새로운 조류가 한국 정치에 등장한다. 기존의 인물중심적 정치를 뛰어넘는 팬덤 정치를 등장시킨 것이다. 정치인의 별명을 아이돌과 비슷하게 정착시킨 것, 팬덤 문화의 여러 요소들을 정치인 지지 문화에 들여온 것, 정당을 기획사화, 기업화한 것 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런 요소들은 기존의 것들의 개선에 지나지 않거나 언제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들이긴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것이 아이돌 산업의 연장선인 이유는, 이런 것들이 이제 부르주아 정치가 가진 최소한의 가면마저도 유명무실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가면은 '정치란 다양한 가치들의 경쟁이다'라는 명제이다.
이제 정치는 '공정'한 오디션을 통해 뽑힌 한 개인의 일생을 조명하며 관음하는 팬덤의 것으로 전락했다. 인물 중심 정치에서 이제 인물 외에 다른 것은 남지 않았다. 보수야당의 부진은 곧 인물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그 인물은 철인 정치를 해낼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스토리와 외모와 무대 퍼포먼스를 판매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뜻한다. 홍준표와 같은 인물은 자신만의 사상이 있고 동시에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인물 중심 정치의 예시에 딱 맞는 정치인이다. 고전적이면서도 포퓰리즘적인 면을 동시에 가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위해 지지자 시장을 알아서 늘려줄, 그를 유사연애하듯 소비하는 팬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현 상황은 진보정당에게 오히려 기회이다. 아직은 정치를 가치의 경합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의 경쟁만으로는 안 된다. 진보정당은 행정 대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쟁점은 장기 전망이다. 전망 수립을 위한 가치와 이념이다. 정책은 그를 위한 징검다리여야 한다. 징검다리를 왜 지금 시기에 이 자리에 놓고자 하는지, 이 징검다리를 통해 우리는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에 대해 항상 솔직해야 한다. 팬덤식 정치나 인물 중심적 정치, 포퓰리즘적 탈이념 정치는 당장에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진보정당이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다행히도 아이돌식 팬덤 문화를 통한 지지층 확보는 현재로선 오직 문재인과 지금의 민주당만이 가능한 영역으로, 현 정권이 끝난 이후에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는 정치인은 조만간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규격화된 상품으로 파는 것이 결국에는 가능해졌듯, 인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품화된 정치는 언젠가 규격화되어 시장에 등장할 것이다. 그 때는 정당은 진정한 의미의 정치인 기획사가 될 것이다. 그 흐름에서 진보정당은 반드시 역행해야 한다. 흐름에 동참하여 지지율을 올린다 한들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로서의 사회주의라면, 진보정당은 지금의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가 한정되고 왜곡된 자유라는 점을 지적하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소비주의와 시장논리에 정면으로 역행해야 한다. 거기에서 차별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진보정당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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