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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능력에 대하여 본문
어느날 R은 나에게 예민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했다. 운동을 하는게 컨셉인가 했는데(컨셉인 분들이 워낙 많긴 하다) 진심으로 힘들어하는걸 보며 진정성을 느꼈다는 말도 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자신은 세월호 사건을 뉴스로 보면서도 눈물이 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나도 비슷하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터질 때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고2인가 그랬을텐데, 배가 침몰해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4월 16일 자려고 누웠을 때, 감정표현이 참 없는 아버지가 안방에서 흐느끼는걸 엄마가 달래는 소리가 문틈으로 들어왔던 일은 기억한다. 2년이 지나 대학에 오고 나서야 세월호 사건으로 처음 울어보았다. 아마 4.16 2주기 집회였던 것 같은데, 무엇에 그렇게 마음이 아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연단에 선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에서 그 서러움이 전해져 왔던 것 같다.
공감능력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14년도의 나는 공감능력이 근본적으로 부족했고 2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공감능력이 상승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뉴스 꼭지 하나하나에 감정을 느끼고 슬퍼하거나 분노할 만큼 감정이 풍부하진 않다. 단지 직접 보고 들은 것, 날것의 경험은 공감능력이 메마른 나같은 인간도 사회운동의 장으로 나서게 하는 것 같다.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기어이 부검하겠다며 표정 없는 전경들이 전쟁하듯 들이닥치는 장면, 단식을 해서 얼굴이 반쪽이 되어버린 선배 얼굴, 몇달 전까지 평범한 생활인이던 노동자가 삭발식 후 까끌해진 머리를 만지며 멋쩍게 웃자 동료들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뉴스로 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을 풍경이지만 그 자리에 선다면 그렇게 기가 막히고 서러울 수가 없다. 아무튼 공감이란 것은 한 인간의 경험이란 한계 내에서 이뤄지는게 아닌가 싶고.
아마 아버지가 흐느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자식이 그렇게 허망하게 갔다고 생각하면 기가 막힐 것이다.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그냥 기사를 보다 생각이 났다. 자본주의는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드는가.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899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사태] 고공농성 조합원 “쇠사슬 두른 동료보고 울었다” - 매일노동뉴스
“동료들이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저지에 나선다는 계획을 전혀 몰랐다. 쇠사슬을 두른 동료들을 보면서 울었다.” 경북 구미시 외국인투자전용단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동 옥상에서 18일
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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