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룸펜

일본 마르크스주의사 개설 공부노트 본문

낙서장

일본 마르크스주의사 개설 공부노트

0079char 2021. 2. 9. 23:37
728x90

책: 일본마르크스주의사 개설

저자: 고야마 히로타케

1) 마르크스주의의 이식

1919년 이후 노동운동, 사회운동이 부활하며 마르크스주의의 본격적인 이식이 시작됨.

자본론 번역 및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저작이 번역되어 수입되지만, 아직까지는 일본 사회를 마르크스주의적 틀을 통해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함.

1920년대 초 국제공산주의 영향받아 일본공산당의 결성: 외국에서 일본 운동 분석하려는 시도 나타남

코민테른 작성 '일본공산당 강령초안'(최초의 마르크스주의적 일본사회 총체적 분석)

-일본 국가권력은 반봉건적 특질(권력의 메인은 천황제, 하지만 국가권력을 쥔 '블럭'이 존재함)

-대토지 소유자와 상공 부르주아지 일부가 결합한 블럭에 국가권력을 가짐(블럭권력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일부와 결합해 부르주아혁명을 달성(1단계) 이후 사회주의 혁명(2단계)

 

2) 마르크스주의의 응용단계

1923년 이후 운동 퇴조기, 노동운동의 자유주의화, 야마카와 히토시와 야마카와주의의 등장

야마카와주의(1922년 '방향전환론')

i) 방법론

자본주의 발전단계 규정 후 지배계급의 정치적 배치 폭로

역사적 특수성: 일본 부르주아지는 서구와 달리 비혁명적, 따라서 일본 자본주의는 부르주아가 아닌 관료군벌에 의해 달성됨. 일본 부르주아지는 봉건제와 군주제에 혁명이 아닌 합류하여 동화되었고, 타협을 통해 권력을 잡음. 부르주아지는 권력을 탈취하지 않고 '(점차) 떼어먹음'으로써 후에 권력을 완전히 (관료군벌로부터) 확보했고[각주:1], 제국주의 단계로 진입함. (부르주아에게 권력이 완전히 넘어갔다고 분석함으로써 천황제에 대한 분석을 아예 건너뛰는 오류가 발생)

but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불완전하고, 무산계급 운동은 부르주아와 쁘띠 운동에 종속된 상황.

ii) 방향전환론

제국주의 단계이므로 당면혁명은 PT계급의 사회주의 혁명이 되어야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불가능. 따라서 우선 달성되어야 할 과제는 '계급주체의 사상적 조직적 확립', 즉 무산계급의 정치의식화와 계급의식화, 타계급 운동으로부터의 탈종속화. ->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무산계급을 분산시키지 않고 전부 그대로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결집시켜야'

iii) 공동전선당

방향전환론에서 제기된 과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공동전선당', 즉 '단일무산정당'이 제안됨.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동맹세력이 아닌 경쟁상대 및 위험요소로 봄.

공동전선은 '통일전선'의 일본의 특수한 형태: 무산계급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부르주아의 영향에서 완전히 독립한 당

공동전선의 임무:

장기적 - 무산계급의 정치권력 장악

당면과제 - 부르주아, 쁘띠에 의해 무산계급 정치세력이 분해, 해산, 동화되는 것을 막는 일 -> 전무산계급을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독립된 무산계급 정치세력으로 결속시켜야 한다!

구성요소: 조직된 도시PT, 농촌의 PT적 요소인 소작농, 미조직 PT 및 PT적 요소, PT의 지도를 받는 준PT, 타계급에서 탈락한 약간의 요소.

강령: 모든 반자본주의 요소의 결합이므로 강령은 노동자-농민의 타협의 산물이어야 한다. 공동무산정당이니까 일반적인 무산정당이나 노동자정당이랑은 다를 수밖에 없음. 무산계급의 혁명적 요구를 최대한으로 내걸되, 추상적인 정책보다는 당면한 이해와 요구 최대한으로 대표해야 함. 봉건적 사회제도 철폐, 참정권, 자본가 및 지주 이익을 위한 제도 반대 등.

Q: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서 당 차리면 의견이 서로 많이 다르지 않을까요? A: ㅇㅇ 그래서 분파 인정하고 발표와 토의 보장해줘야함.

3) 보통선거법 이후 무산정당과 공산당
i)무산정당
-1925년 보통선거법 통과, 무산정당 건설 둘러싼 좌우파 대립
-총동맹(우파노조): 노조의 정치부문으로써의 무산정당. 의회주의. 공산계 배제. 지역적 무산정당
-평의회(좌파노조): 야마카와에 영향받은 계급적 전국적 무산정당.
-결국 농민조합 중심의 전국적 무산정당 '농민노동당' 건설, 3시간만에 해산.
-1926년 우파 중심 무산정당 '노동농민당' 건설. 좌파는 주로 노동농민당 지역지부 위주로 활동.
-야마카와는 우파 위주 무산정당에도 단일무산정당인 점에서 단일정당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비판적 지지).
-노동농민당 우파의 중앙 장악, 좌파 배제가 이뤄짐에 따라 좌우대립이 격화되며 야마카와는 단일무산정당을 지키기 위해 당내 좌파가 중앙과 운동에 공공연하게 진출해야한다 결론(좌익진출).


ii)공산당
-코민테른의 일본공산당 해체 반대->재건운동 시작, 야마카와는 이에 비판적, 불참
-전위당론에 입각한 후쿠모토주의의 야마카와주의 공동전선당론 비판
-그러나 무산정당이 실제로 결성되어 무산계급을 대표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야마카와주의는 현실적으로 공산당 재건운동 내에서도 인정받고 여전히 주류의 위치를 차지함.

후쿠모토주의
-후쿠모토 카츠오: 1924년 유럽 유학 귀국 직후 첫 논문 '경제학 비판을 통해 논한 맑스 자본론의 범위'를 통해 사회주의 운동에 등장. 1925년부터 예리한 논법과 풍부한 문헌지식을 통해 기존 일본 운동론, 조직론, 이론가를 총비판하여 충격을 가져옴.

i) 후쿠모토의 야마카와 비판
-대상을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해 정치투쟁을 경제투쟁의 엉거주춤한 연장으로 만들었다.
-사회주의운동과 노조운동을 별개로 파악했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계급투쟁은 투쟁과정을 통해 발전하는데, 야마카와는 한 번 정제되어 선별된 전위로 충분하다고 여김. 운동의 전환이 시작될 때 이미 선별된 전위로는 불충분. 야마카와의 주장은 조합주의적 주장.
-운동의 대중화, 대중의 의식을 전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 경제투쟁으로부터 정치투쟁으로 확대 등의 주장은 비변증법적 사고이다.
-'조합주의적 투쟁으로부터 사회주의적 투쟁으로의 전환'의 필연성은 이해하지만 '사회주의적 투쟁'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절충주의적, 비변증법적, 조합주의적 결론이 났다.
-좌익적 정신의 자연성장을 바라는 기회주의이다.

ii) 후쿠모토가 주장한 '올바른 방향전환'
-전제: 일본 자본주의 몰락 과정을 규명해야 함. 노동조합운동을 지양하고 무산계급의식을 쟁취해야함.
-무산정당운동은 한 단계를 건너뛴 것이므로 이전 단계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함: '결합 전의 분리'-> 무산정당에의 결합을 중단학 순수한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를 분리하여 순수한 결정으로 만들어야 함. 이를 위해 투쟁을 이론투쟁만으로 제한.
-(이는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의 기계적 적용)

iii) 국가론과 혁명론
-일본 BG는 절대적 전제적 세력 타파 못하고 있고, 세계와 일본 제국주의는 몰락중, 피억압계급 대다수인 소농민은 궁핍화중.
-자본의 지배 타파 위한 투쟁으로의 필연적 발전을 위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쟁취'하는 과정이 필요.
-BDR은 과정일 뿐이다. BDR의 성공은 급속한 전화를 통해 즉각적인 PTR로 이어져야 함. 이 점에서 BDR성공만을 내건 일본 혁명분자들은 오류이다.
-성공 이전까지는 투쟁은 계급적 대중적 공동전선(통일전선)을 통해 이뤄져야함. 이 투쟁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BD타파 투쟁까지 성장 전화가 가능.

iv) 정리
-일본 자본주의는 몰락중, 국가권력은 절대적 전제적. -> 천황은 토지귀족을 대표하지만, 토지귀족-부르주아간 권력균형 속에서 독립성 유지 위해 보호정책을 통해 자본가계급 육성.
-야마카와의 인식(부르주아 권력론)이나 코민테른의 일본테제(블록권력설)와 다른 새로운 인식.
-후쿠모토의 운동론: ①전면적 이론투쟁을 통한 맑스주의적 의식 획득 -> ②결합 전의 분리를 통해 의식적 전위당 형성 -> ③ 조합주의를 全PT적 정치의식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무산정당 등에 좌익적 정신 침투시킴(전국적 일간신문 통한 정치적 폭로)

~69p

 

  1. 재벌, 대자본, 대지주를 대변하는 정우회 내각 출범을 근거로 삼음 [본문으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