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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잡설 - 왜 번역이나 하고 있는가.

0079char 2021. 1. 20.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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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연구 및 문건번역 페이즈1이 끝나간다.

당초 목표는 일본 사회당 좌파의 입장을 통해 정의당과 진보정치에 몇마디 얹어보려던게 전부였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진행하다보니 전전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이 전후 혁신세력과 좌익에 끼친 영향과 맥락들을 어느정도 총체적으로 볼 수 있게된 것 같다.

일본 학생운동사를 독자연구하며 공산당(강좌파)과 학생운동 신좌익 세력의 관계는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항상 노농파 및 사회당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 같다. 사회당에 대해 아는 바는 전후 공산당이 무장투쟁노선 때문에 의석이 격감하고 사회당이 약진했을 때 나온 명언(?)이자 정신승리인 '사회당은 공산당의 정책을 베꼈기 때문에 약진했다' 정도로만 파악했던 것 같다. 하지만 노농파와 사회당의 사상은 이렇게만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중요하다. 이들 사상은 일본의 특수성 위에서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실이고, '마르크스주의의 급진성을 잃지 않으면서, 사회운동과 유리되지 않으면서 의회주의와 접목하는 방식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사회당의 현실 정책과 강령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들여다봤으니, 과거로 돌아가 사회당과 공산당의 사상적 뿌리인 일본 자본주의 논쟁을 들여다봐야 한다. 일본 자본주의 논쟁을 통해 1927년부터 1970년대까지의 일본 혁신진영 운동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들이 가졌던 사상, 바랐던 구체적인 국가의 상, 계급에 대한 태도, 사회운동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이를 현실정치와 접목시키려 했던 노력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여기가 페이즈2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운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운동에 대한 평가를 진행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좌익들의 쟁점은 식민지적 특수성과 압축 근대화라는 특수성이라는 상이한 특수성들이지만, 이들 쟁점을 통해 나뉘어진 전선은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발전단계에서의 위치는 어디인가'라는 점에서 양국이 동일하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양국의 좌파는 모두 이 논쟁을 시원하게 끝내지 못했다. 보편성을 경시하고 자국을 봉건제로 보아 통일전선체를 주장한 일본의 강좌파와 한국의 자주파는 빠른 속도로 우경화했다. 한국의 민중민주파는 설득력있는 대안사회를 제시하지 못하고 수세적으로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만 반복한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노농파도 전전의 유연하고 현실적인 운동 정신을 어느정도 잃고 전후에는 '궁핍화 혁명론'에 메달려 '혁명 대망론', 즉 혁명적 정세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수세적이고 한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결국 같은 고민과 같은 상황이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일본과 같이 한국 좌파가 완전히 몰락한 상황은 아니므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울 약간의 시간은 남아있을 것이다. 일본 혁신진영이 도달했던 점과 한계였던 점을 짚고 한국의 현 운동이 나아가야 할 지점을 살펴보는 작업이 페이즈3이 될 것이다.

나는 한국 좌파와 진보정당이 레닌주의적 급진성을 가지면서 현실에 유연하게 조응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지고 항상 공세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이길 바란다. 사회주의는 누구에게 세금을 더 물리고 무슨 기업을 국유화하는지 따위를 다루는 사상이 아니다. 아무리 세련된 조세정책과 국유화정책을 들고 나온들 그것이 이념의 실천이 아닌 단순한 시류에 휩쓸린 정책이거나 '현실주의적' 정책이라면 결국 알맹이가 텅 빈 것이나 다름없다. 시류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진보정치가 자유주의 정치 2중대를 탈출하는 길이다. 내 생각들과 번역들이 좌파와 진보정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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