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룸펜

오이코라 경찰(おいコラ警察) - 경직법 반대투쟁과 일본 경찰 본문

낙서장

오이코라 경찰(おいコラ警察) - 경직법 반대투쟁과 일본 경찰

0079char 2020. 12. 18. 01:20
728x90

일본 사회운동의 연표를 보다 보면 자주 나오는 투쟁들이 있다. 1,2차 안보투쟁, 반 레드퍼지 투쟁, 나리타 투쟁 등은 이미 유명하니 기존 자료들을 참고하길 권한다.

위에 열거된 운동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강하게 일어났던 또 하나의 투쟁이 있는데, 바로 경직법 반대 투쟁이다. 여기서 경직법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말한다.

1958년 격동의 전후, 일본 사회의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왔다. 패전으로 반전 분위기가 공감대를 사고 있음에도 평화헌법을 벌써부터 개악하려는 움직임이 보수정권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 공산당은 소감파와 국제파의 반목과 분열을 거치며 농촌에서 공공연하게 무장투쟁을 일으키는 등 소요사태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당시 일본의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였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외조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시는 전후 일본의 체계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완성한 인물이다. 경제적으로는 국가 주도의 통제경제, 정치적으로는 이후 자민당이 확고한 집권여당으로서 자리 잡은 55년 체제를 완성했으며, 외교적으로는 미일 안보조약 비준을 통해 미일동맹을 이뤄냈다. 여러 모로 일본의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기시 내각은 공산당 등에 의한 소요사태를 진압하고 치안을 다시금 되찾고자 시도하는데, 이 시도가 바로 경직법 개정이다. 개정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자.

...(이 법안은) 법집행을 개인의 생명, 안전, 재산보호에 중점을 두던 것으로부터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지키는 것까지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그에 따라 경찰관의 경고, 제지나 출입 권한을 강화하고, '흉기의 소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영장 없는 신체검사, 보호를 명목으로 한 유치장 감금을 가능하게 한 내용이 들어갔으며, 국민들에게 '오이코라 경찰'을 상기시켰다. 법 상정에 앞선 10월 4일은 미일 안전보장 조약 개정 제1회 회담이 있었는데, (경직법 개정은) 안보 개정에 연동한 움직임이었다.

-일본대백과사전-

즉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명목으로 좌익 세력의 무장투쟁과 소요, 총평 등에 의한 노동조합 쟁의를 진압하고, 나아가 당시 일어나고 있던 미일 안보 개정 반대운동도 같이 진압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입법이었다. 당연히 일본 좌파는 반발했고, 혁신계 정당과 노동자, 농민 단체들이 합세하여 국민적인 반대운동을 조직했다. 당시 참가한 단체들의 조직 인원을 모두 세면 1000만 명에 달했다고 하고, 제1야당 사회당과 제2야당 공산당,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들의 유기적 연계 또한 잘 이루어져 원내 투쟁과 원외 대중운동 모두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결국 기시 내각은 경직법 개정을 포기하고, 시민사회와 혁신계열은 압도적 다수로 원내 의석을 점하던 자민당을 상대로 대중운동을 통해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이때 고양된 대중운동의 열기는 직후 몇 년 후 안보투쟁으로 이어지고, 사회 혼란을 봉합하지 못한 기시 노부스케는 자민당 내의 압력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나저나, 백과사전에서 이야기하는 '오이코라 경찰'은 대체 무엇인가. 오이코라 경찰(おいコラ警察)은 직역하면 '어이! 야! 경찰'쯤이 된다. 패전 이전의 일본제국 경찰을 일컫는 말인데, 열 받거나 기분 안 좋으면 '어이! 야!' 하면서 아무나 붙잡고 불심검문과 수색을 하고 유치장에 처넣던 당시 고압적인 경찰들을 의미한다. 일본 순사가 떨치던 악명은 식민지 조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경직법 반대 투쟁은 승리했지만 일반 제복 경찰의 태도 또한 한국과 달리 여전히 고압적이고 불친절하다. 자신들이 보기에 수상해 보이면 일단 붙잡고 불심검문을 하기 일쑤이며 심하면 임의동행을 요구하기도 한다. 당연히 일본 법률에도 영장 없는 수색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은 거동수상자로 판단한 사람에게 그런 걸 따지지 않는다.

일본 경찰의 공안 기능은 여전히 비대하다. 일본 경찰 공안부는 경찰백서를 통해 극좌, 극우 폭력단체를 규정하고 이들을 폭압적으로 관리한다. 관리 대상 중에는 과거 폭력투쟁을 진행했던 공산당, 신좌익 정파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60년대의 무력투쟁(실력투쟁)을 진행하지 않은지 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심지어 공산당은 공개적으로 무력투쟁 노선을 포기한다고 선언한지 6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공안부의 관리 대상이다. 휴가철에 사복 경찰관이 내내 미행을 붙는 것은 예삿일이고, 혁공동의 경우에는 혁공동 소유 출판사 건물 앞에 1년 365일 주차되어 있는 검게 선팅 된 캠핑카 속 공안경찰들이 건물에 출입하는 인원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관리한다. 상당히 경찰국가스러운 면모가 많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