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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당 '길' 문건에서 드러난 몇 가지 특징들 본문
'일본에서의 사회주의에의 길'(이하 '길') 문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이를 파악하려면 이 문건이 작성된 배경을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사회당은 비공산 계열 좌파 빅텐트였다. 일본 공산당은 패전 이전에나 이후에나 좌파의 상징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러나 일공의 자멸에 가까운 대중 전술들(농촌 게릴라전, 무력투쟁)과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는 당론들(6전협 등)에 따라 절대적 상징성을 잃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일본사회당이 유의미한 자민당 대항세력으로 인정받아 선거에서 선전하게 된다. 사회당은 애초부터 빅텐트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당내 분파 또한 매우 복잡했다. 크게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분파와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는 분파가 있었는데, 후자는 대체로 일본사회당에 합류한 정당 중 하나인 '노동자농민당' 출신 인사들이었다. 노동자농민당은 후에 일본무산당을 형성했고, 이들은 훗날 일본사회당 좌파를 구성하게 된다. 일본무산당은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아니었으나, 당권 장악 후 총평의 급진화와 더불어 같이 더 급진화되며 레닌주의적 지향을 가지기에 이르고, 이는 '길' 문건이 수정될 때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부정하는 문구가 수정되었다는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길' 문건은 (작성자 스즈키 모사부로가 밝힌 바에 따르면) 크게 네 가지 과제에 대한 분석과 사회당의 투쟁방향을 논하는 식으로 작성되었다. 이 네 가지 문제의식과 분석과 그에 대한 대안의 흐름은 일본 '노농파'의 문제의식과 거의 일치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사회당 좌파를 장악하고 있던 정파가 노농파를 계승한 '사회주의협회'였고, 그 수장이 스즈키 모사부로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협회 테제」의 학습을 위하여(1971)'에 드러난 노농파의 인식과 '길'문건에서의 인식을 비교하면 다음의 표와 같은데, 그 입장이 서로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노농파 입장 |
일본사회당 '길' 문건(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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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현실에 대한 인식 |
부르주아 군주제(1927): 메이지 유신의 부르주아 혁명적 성격 |
미국 제국주의를 통해 이권을 보장받는 국가독점자본주의 |
주요 공격 방향 |
제국주의, 부르주아 |
(미) 제국주의 및 일본 국독자 |
주요 타격 방향 |
금융자본, 독점자본 등 제국주의적 부르주아 계급 |
제국주의적 독점자본, 독점자본의 대행인인 자민당 정권 |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
각국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가 있고, 현실사회주의는 그것의 반영. |
노농파 입장과 동일->후에 레닌주의적 요소들(PT독재)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좌경화 |
정당론 |
단일 무산계급정당의 합법적 대중정당화를 통한 공동전선 |
합법적 무산계급 대중정당과 그 주변의 '반독점 국민전선' |
혁명론 |
무산계급정당을 통한 노동계급의 계급의식 형성, 이를 통한 자생적인 전위 형성을 통한 혁명론 |
반독점 국민전선을 기반으로 한 의회 혁명을 1차적으로 진행, 이후 독점자본의 반격을 분쇄 후 의회를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 |
이런 거 걸고 40년 동안 제1야당 대체 어케했누;;
1.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근로대중 궁핍화론
이 부분은 일본사회당이 당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충실히 따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길'문건에서 보이는 사회당 좌파의 현실인식은 다음과 같다.
1) 일본의 고도성장은 국내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일본 독점자본의 타국에 대한 제국주의적(신식민지적) 진출에 따른 것이다.
2) 따라서 일본 자본은 국내적으로는 노동자의 임금, 공공 사회 복지 등을 억압해야 하고, 국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미국 제국주의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2)-1 미국은 일본과 안보조약을 통해 동아시아 정세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주일미군기지를 갖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일본 독점자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타국에 제국주의적으로 진출하기 용이하게 되었다. 헌법 개악을 통해 군대를 보유하고자 하는 우파의 의도는 바로 이런 제국주의적 정책을 확대함으로써 독점자본의 이윤에 복무하기 위함이다.
2)-2 독점자본은 국내적으로 임금과 사회복지를 억압하는 한편,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사치와 낭비 등의 풍조를 자본주의가 조장한다. 따라서 근로대중은 필연적으로 궁핍해진다.
이 현실인식을 잘 살펴보면, 이들이 40여 년간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사회당의 지지기반은 계급적, 금전적으로는 전국적 노동조합이었던 총평이었고, 대중적으로는 호헌 평화주의자들이었다. 전자는 파업권이 박탈되어 급진화하기 쉬웠던 공무원 및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다수인 노총이었고, 후자는 일본 사회당이 자민당이 개헌선(의석 2/3)을 넘는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꾸준히 사회당이 1/3 가량의 의석을 차지하도록 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사회당에게는 마르크스주의적 현실인식을 포기하고 유연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계급적 노동운동을 수행하던 총평의 지지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고, 한편으로는 (호헌 평화주의적 이상론 또한 언제든지 수정 가능하게 된다는 점에서) 대중적 지지기반인 호헌주의자 또한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총평의 몰락과 더불어 현실주의적 입장으로 급선회했던 1990년대 사회당은 이런 이유로 대중적 지지 또한 한 순간에 잃어 제1야당에서 군소정당으로 몰락하고 만다.
아무튼 사회당의 노선은 상당히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적이었는데, 이는 근로대중 궁핍화론에서 드러난 특유의 낙관주의적인 면모에서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제시한 혁명의 가능성은 바로 독점자본의 수탈과 수명이 다한 독점자본주의의 몽니로 인해 근로대중이 점차적으로 궁핍해질 것이라는 데에서 온다. 이들은 점점 궁핍해진다 해도 바로 독점자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지만, 무산계급 정당의 올바른 지도가 있다면 반독점 국민전선에 참가시켜 반독점 투쟁을 전개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길'의 기대이다. 즉, 자본주의가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계급이 늘어날 것이므로 혁명이 점점 용이해진다는 일종의 결정론적 세계관인 것이다. 다만 이 안에서 무산계급 정당의 주체적인 역할(전선의 규합, 전략전술정책의 개발, 투쟁방향의 제시)을 규정함으로써 일방적인 결정론으로 비춰지는 것을 피하고자 한 노력도 엿보인다. 노동계급의 실력투쟁을 통한 정권 쟁취라는 블랑키주의적 방식이 아닌 대중정당을 통한 의회주의 평화혁명을 주장한 이유도 결정론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노농파의 주장이 '길'문건에도 녹아들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현대 일본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 대결의 장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민중민주주의적 공동전선을 구축해 1차적인 혁명을 한 후에야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고, 이를 위해선 합법 대중정당을 통해 그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2. 반독점 국민전선을 통한 집권론
'길' 문건이 주요 타격 방향을 일본 독점자본과 자민당 정권으로 삼은 이상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반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리란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이 주장하는 공동전선은 '반독점 국민전선'이다. '반독점 국민전선'은 독점으로 고통받는 인민이 계층별로 규합된 것인데, 노동자 계급이 주도, 농민과 중소기업 경영자와 지식인층이 참가하는 구조이다. 즉 일종의 인민민주주의적 개념이다.
이 부분은 매우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데, 당시 일본의 좌파 정치에서 일본사회당과 정치지형을 양분하고 있던 것이 일본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민족해방 혁명을 하고자 했던 일본공산당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NL-PD가 대립하던 맥락과 (주체사상 여부를 제외하곤) 매우 유사하며, 세부적인 내용에서도 상당 부분이 겹치게 된다. 아마도 아시아적 정치 지향의 유사성으로 인해 이런 대립구도가 80년대 한국 학생운동에서 재현되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을 할 수 있고, 한편으론 일본의 서적을 몰래 들여와 번역하여 학습하던 80년대 학생운동 진영의 관습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 한편으론 당대 일본공산당에서 분리되어 활동하던 일본 신좌익 분파들이 일본 사회당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활동을 했던 이유 중 이론적인 차이가 무엇일지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일본 신좌익 분파들은 일본 공산당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일공을 스탈린주의 정당으로 규정했고, 그에 대한 대립항으로서 트로츠키주의(내지는 반스탈린주의)를 내세웠다. 따라서 일본 공산당과 명확하게 선을 긋고 그들의 운동을 비판하기 위해선 당시 스탈린주의의 특징이었던 인민민주주의, 개량주의를 내세운 일본사회당과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사회당 |
일본공산당 |
신좌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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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1960년대 일본의 현실에 대한 인식 |
국가독점자본주의(메이지 유신을 통해 부르주아 혁명 완료됨) |
반봉건적 식민지(천황제의 존재, 미국의 지배, 농업의 우위 등) |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 등등 |
혁명의 주체 |
노동자를 중심으로 농민, 중소기업 경영자, 지식인 |
농민을 중심으로 민족(6전협 이전) -> 국민(6전협 이후) |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농동맹 + 학생 |
학생층과 학생층의 지도를 받는 노동계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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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론 |
반독점 국민전선을 통한 의회혁명 -> 사회주의 이행 |
농촌 게릴라 투쟁(6전협 이전) -> 의회혁명을 통한 1단계 혁명(민주주의 혁명) 후 2단계 혁명(일국사회주의 혁명)(6전협 이후) |
프롤레타리아 연속혁명론 |
다시 돌아와서, 반독점 국민전선은 단순한 공동전선의 의미만을 갖지는 않는다. '길' 문건이 반독점 국민전선을 강조해서 '당 주위의 반독점 국민전선'이라고 표현하는 등, 이 전선은 의식적으로 당의 지지기반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근로대중이 궁핍화해서 특정 공동전선 아래에 모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당의 명확한 정치기반이 아니라면 이후 정권 쟁취에 성공한다고 해도 사회주의 이행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길' 문건에 따르면 사회당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도 독점자본 세력은 사회당의 사회주의 이행을 저지하려고 온 힘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반혁명을 분쇄하기 위해선 반독점 국민전선의 일상적인 투쟁과 정치적 고양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나와있다. 즉 이 전선은 1차적으로는 독점자본주의의 피해자들이고, 2차적으로는 사회당이 의회 내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게 해 줄 사회운동적 기반이며, 3차적으로는 사회당이 올바르게 지도하여 투쟁과 정치 수준을 올려나가야 하는 대상이다.
3. 국제연대, 대외 정책론
일국사회주의적인 일본공산당과 달리 신좌익 분파와 일본사회당은 국제주의적인 지향을 가진다. 다만 누구를 연대의 대상으로 삼는지에서 신좌익과 일본사회당은 차이가 있다. 일본사회당의 (문건상으로의)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은 비판도 옹호도 아닌 관망에 가깝다. 소련과 중국을 일단 사회주의라고 인정한 후 그에 대한 가치판단을 따로 진행한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노농파의 입장과 동일하게 사회당의 현실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인식은 '각 국의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사회주의를 이루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라는 다원주의적인 인식이다. 다만 소련에 대해서는 냉전을 주도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약간의 비판을 한 점이 보이지만, 당시 소련과 다른 형태의 경제를 갖던 유고연방과 중국의 부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사회주의권도 다극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비판을 의도적으로 피한 이유는 1) 반제국주의 2) 사회당에 대한 정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 등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이행에서 혁명이 압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길'이 낙관한 이유는 반독점 국민전선이 국내적으로 자신들을 지탱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소련과 중국이 미국과 국내 독점자본의 반혁명 음모를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현실사회주의 국가가 자신들 정권과 친화적이라면 반혁명을 어느 정도 저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회당은 예상했다. 이를 반영하듯 사회당은 55년 체제에서 소련, 중국, 북한을 가장 자주 방문한 정당이었고, 이들 국가와의 관계 개선과 무역 확대를 위해 의회 내에서도 힘썼다.
그러나 사회당의 대외노선은 어디까지나 다극화, 평화주의, 적극적 중립이었다. 이들은 일본이 냉전 체제에서 특정 진영에 들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소련과 중국을 대한 태도도 어디까지나 대등한 사회주의 국가로서 대한 것이지, 코민테른의 영향력에 든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고자 표방한 대상은 비동맹 중립을 꾀한 제3세계 국가들과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었다. 물론 '길'이 지향하는 바는 이러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사회당의 노선은 일본 원내정당 중 가장 친소, 친중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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