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중핵파
- 강좌파
- 일본 정치
- 도쿄대 투쟁
- 스즈키 모사부로
- 일본 녹색당
- 구조개혁파
- 제국주의
-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 오시오 헤이하치로
- 사회민주주의
- 정의당
- 에다 사부로
- 일본형 사회민주주의
- 일본에서의 사회주의에의 길
- 일본 사회당
- 후쿠시마 미즈호
- 평화헌법
- 사이토 코헤이
- 안보투쟁
- 니혼대 투쟁
- 일본 사민당
- 일본 좌파
- 인신세의 자본론
- 일본사회당
- 구조개혁론
- 일본 공산당
- 노농파
- 전공투
- 야마카와 히토시
- Today
- Total
목록분류 전체보기 (48)
방구석 룸펜
*이때까지 확립된 생각 정리중인 글입니다. 자주 수정될 수 있습니다. 참고한 텍스트도 적어두었습니다. *맹점을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읽어볼 텍스트 추천도 좋습니다. 1. 사회민주주의의 급진화가 필요하다. 민주사회주의 기획은 큰 틀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원형을 되찾아 오겠다는 시도이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민주사회주의가 톱-다운식 사회주의의 2편이 되지 않기 위해선 그 세세한 부분을 잘 챙겨야 한다. 첫째로, 민주주의의 원칙이 무엇이며 자유민주주의의 어떤 부분이 한계인지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둘째로, 신좌파적 사회운동의 동력을 적절하게 포섭해야 한다. 셋째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변혁의 주체를 만들어낼(민중을 만들어낼) 방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넷째로, 사회주의적 구조..
계급적 정치의 복원과 (민주)사회주의의 대안(수정중) 일본사회당 좌파와 민주노동당 '전진'의 사례 비교-당내 좌파의 영향력 재고를 위한 조건들 사회운동 정당에 대한 일본사회당과 한국 정의당(주류)의 입장 차이 비교 산별노조 건설이 운동에 갖는 의미-한국과 일본의 실패사례 분석 1950년대 일본 학생운동과 공산당과의 관계를 통한 오늘날의 한국 정의당 학생운동 비교 분석
일본 사회당 -'일본에서 사회주의에의 길': 1964년 이후 사실상 일본사회당의 강령적 문서
*일본사회당은 1951년 당내 좌우 갈등으로 인해 사실상 '좌사회당'과 '우사회당'으로 분열되게 됩니다. 이후 52년 우사회당이, 54년 좌사회당이 각자 당대회를 통해 강령을 제정하는 등 거진 남으로 갈라서지만, 당시 사회당이 선거에서 추세상 상당히 약진하고 있었다는 점, 총선이 다가온다는 점 등이 명분이 되어 좌우 사회당은 재통합하게 됩니다. 의회주의와 사민주의(우사회당), 마르크스주의와 궁핍화 혁명론(좌사회당) 등에 입각하여 쓰인 당시 좌우 사회당의 각자의 강령은 추후 번역해서 따로 올릴 예정입니다. 본 글은 재통합 당시 채택된 강령으로, 당시 사회당 내부에서 좌파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좌사회당의 강령을 조금 희석시킨 수준으로 작성되었다는 평을 받습니다. 오역 등은 댓글 남겨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본 번역은 2018년 12월 발간된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중핵파)'의 학생조직인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의 기관지 '중핵' 복간 4호 「日大・東大闘争50年 ー21世紀学生運動の爆発を!」를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2) 니혼대 투쟁 전사(前史) '1968년'에 이르기까지 니혼대생의 투쟁을 돌아보고자 한다. 전후 혁명기, 니혼대 학생운동은 전국 학생운동 중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1945년 12월의 도쿄 도내 학생 연락 회의(東京都下学生連絡会議)에선 도쿄대나 와세다대와 더불어 니혼대학의 이름도 등장한다. 그 파도는, 1948년 가을부터 수업료 인상과 학생운동의 지도부 탄압에 반대하는 니혼대 미시마 캠퍼스에서의 '미시마 반파쇼 투쟁'에서 폭발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퇴학처분의 남발(..
*본 번역은 2018년 12월 발간된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중핵파)'의 학생조직인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의 기관지 '중핵' 복간 4호 「日大・東大闘争50年 ー21世紀学生運動の爆発を!」를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1) '68년 9.30' 료고쿠 강당 대중 단체교섭 '물러나기로 결의했습니다' - 니혼대학 회장 후루타 쥬지로가 이렇게 발언한 순간, 니혼대학 료고쿠 강당 안은 열렬한 박수갈채가 일었고, 들썩였고, 잘게 썬 색종이들이 휘날렸다. 니혼대학 10만 학생이 반동 대학 당국에 완전히 승리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68년 9월 30일, 료고쿠의 니혼대학 대강당에는 수만 명의 니혼대생들이 결집했고, 그 압력으로 강당이 흔들릴 정도였다. 경찰권력은 참가자 수를 축소 발표했고, TV, 신문 등 ..
˙*본 번역은 2018년 12월 발간된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중핵파)'의 학생조직인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의 기관지 '중핵' 복간 4호 「日大・東大闘争50年 ー21世紀学生運動の爆発を!」를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머리말 2018년은 역사적인 '니혼대 투쟁', '도쿄대 투쟁'의 50주년이다. 신기하게도 2018년에는 전학련 위원장에 다카하라 쿄헤이 군(도쿄대학)이 취임하고, 니혼대에서는 '미식축구 태클 사건'이 일어나 이사장 독재의 부패구조가 폭로되었다. 니혼대학, 도쿄대학은 제국주의 대학에 대항한 학생 반란의 2대 정점이었고, 그 빛은 아직 바래지 않았다. 투쟁은 공유되고 새로운 세대에게 계승되지 않으면 안 된다. 투쟁으로부터 겨우 5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인류사적 대투쟁들과 같이 니..
˙*본 번역은 2018년 12월 발간된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중핵파)'의 학생조직인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의 기관지 '중핵' 복간 4호 「日大・東大闘争50年 ー21世紀学生運動の爆発を!」를 번역한 글입니다. -역자 주 -목차 머리말 제 1장 니혼대 투쟁 (1) '68년 9.30' 료고쿠 강당 대중 단체교섭 (2) 니혼대학 투쟁사 (3) '34억 용도불명금' 발각 - 전공투 결성 (4) 바리케이드 봉쇄가 전교에 확대되다 (5) 수습 선동을 넘어 투쟁은 나아간다 (6) '파괴의 사상'이란 무엇인가? (7) '격동의 10일간'과 '9.30 단체교섭'의 승리 (8) 불굴의 계속되는 투쟁 - 도쿄대 투쟁과의 합류 (9) 지도부에 대한 탄압과 바리케이드 강제 해제 (10) 니혼대 투쟁을 계승하며 제 2장 도..